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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정을 싣지 못한 거대한 스펙터클, <태풍>
김현정 2005-12-13

탈북자 출신인 해적 씬(장동건)은 어린 시절 망명을 거부당해 일가족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지켜봤다. 그 이후 남한과 북한을 모두 증오하게 된 씬은 핵위성유도장치를 손에 넣고 20년 동안 마음에 품어온 복수를 시작하려 한다. 씬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은 해군 대위 강세종(이정재). 충직한 군인 강세종은 씬의 흔적을 좇다가 러시아에 어릴 적 헤어진 씬의 누나 최명주(이미연)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, 그녀를 미끼 삼아 씬과 대면하게 된다. 강세종은 맨몸으로 중국 땅을 헤맸던 남매에게 동정과 우정을 느끼기 시작한다.

<친구> <챔피언>의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<태풍>은 그동안 흥행기록을 세웠던 한국영화들과 상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. 남매애로 대치된 형제애와 전쟁은 <태극기 휘날리며>와 닮아 있고, 적이 될 수밖에 없는 남자들 사이의 공감은 <친구>를 떠올리게 한다. 남과 북 모두로부터 버림받아 갈 곳이 없어진 남자는 <실미도>의 비장미와 비슷하다. 그러므로 <태풍>은 비록 개인적이기는 해도 스펙터클한 전쟁을 담은 블록버스터이면서 독한 눈빛을 걷어낸 눈물어린 기억을 바라보는 정서적인 영화가 되야 할 것이다. 여기에 두개의 태풍과 액션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그린다는 야심까지 자리하고 있다.

스펙터클은 단순한 기술적인 성취에 머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뛰어난 배우이자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. 강세종과 동료들이 씬의 배 태풍에 침입하여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는 액션은 태풍 사이로 커다란 배 한척을 던져놓은 듯한 현기증으로 스크린을 휘감는다. 그러나 <태풍>은 야심적 시도라 할 만한 기나긴 장면에, 그리고 공들인 각종 액션에, 어떤 감정이나 드라마도 싣지 못한다. 정치적인 책략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은 어린 남매의 슬픔이나 자신이 죽는다 해도 복수를 하고 보겠다는 한 남자의 원한은 눈물 방울로 맺힐 만한 드라마였지만 파도와 바람에 휩쓸렸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. 죽으러가는 길인 줄 알면서도 씬과 동행하는 해적들의 심정 또한 난데없고, 씬과 세종의 교감도 의아하다. 태풍호의 철교는 <친구>의 면회실 유리창 같은 역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. 스펙터클과 드라마, 혹은 정서는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. 마음을 울리는 순간들이 언뜻 비치기에 <태풍>의 배타적인 선택은 더욱 아쉬움을 부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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